▲ 한국에서 크게 유행했던 괴담인 '빨간 마스크를 쓴 여자'와 흡사한 '입이 찢어진 여자' 이야기는 일본 만화에서 일본사회 내에 떠돌았던 괴담으로 언급되어, 그 원형이 일본임을 알 수 있다. 이토 준지 공포만화 10권 '소이치의 저주의 일기'(시공사, 1999·)에서는 담임교사사 학생들에 주의사항을 전달하며는 장면에서, 히토시 이와키 작 기생수 한국어판(학산문화사, 1998·아래)에서는 TV방송에서 나오는 형식으로 나왔다. 특히 기생수에서는 괴담이 유행했던 연도가 1978년이라고 제시되어 있어, 1990년대 널리 퍼진 한국과 약 20년에 가까운 격차가 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늑대인간? 빨간 마스크를 한 여자?

반은 늑대이고 반은 인간인 괴수가 골목길 같은 곳에서 갑자기 나타나며, 달리기도 빨라서 일반적인 어린이들은 절대로 도망칠 수 없다. 그리고 끔찍한 살육을 벌인다. 때로는 실제로 봤다는 아이들도 존재했다.

빨간 마스크를 한 묘령의 여인이 어두운 밤길에 갑자기 나타나서는 "내가 예쁘냐"라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으면 마스크를 벗어서 보여주는데, 입이 찢어져 있어 귀에 닿는다. 그리고 "이래도 안 예뻐?"라고 묻는다. 물론, 예쁘다고 대답한다고 이 여성의 폭주와 저주나 때에 따라 일어나는 살육을 막을 방법은 없다. "포마드"라고 세 번 외치면 도망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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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많이 떠돌았던 공포이야기들 대부분은 일본 원작이었다. 심지어 '입 찢어진 여자' 괴담은 퇴치법 중 하나로 제시된 '포마드'조차도 일본 방식을 발음조차 바꾸지 않고 차용했다. 비단 괴담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만화와 드라마·영화·TV쇼 등 대중문화로도 모자라 광고는 물론 괴담까지도 일본을 표절하던 그런 시절이 그리 멀지 않은 예전에 있었다.

아마도 인종과 문화적으로 유사점이 많은데다 섬나라와 분단반도국으로 외부와 철저히 폐쇄된 지정학적 요소까지 비슷한데다, 획일성이 지배하는 일본 사회와 강성독재국가였던 한국 사회에서 민중들이 억눌리고 통제되어 발산하지 모사는 마음을 표현할 길이 이런 것밖에 없다는 공통점도 한몫 했을 것이다.

다만 아날로그 시절에 즐겨 써먹었던 "뉴스에 나왔다" "추적60분에 나왔다" 등은 시간이 흐르면서 써먹지 못하게 됐다. 2000년대 초입까지도 "PD수첩에 나왔다" "마감뉴스에 나왔다"가 괴담에 따라붙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추적60분과 PD수첩은 각각 당대에 어떤 시사고발 심층취재보도 프로그램이 가장 인지도가 높고 신뢰성을 보장받았는지를 보여준다. 뉴스에 나왔다는 부연설명에서 9시뉴스가 아닌 7시뉴스나 마감뉴스가 차용됐던 이유는 상대적으로 시청률이 낮아서 괴담을 듣는 상대방이 못 봤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클릭 한 번으로 몇십년간 몇월 며칠 몇시에 방송되었는지 검색이 가능해지고 몇십년치 분량 중 해당 편이 있었는지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면서 대중매체를 인용한 괴담은 힘을 잃었다.

단, 그 때도 지금도 "신문에 났다"며 괴담이 뒷받침된 일은 없었는데, 인쇄된 실물이 남으며 학교와 도서관 등에서 오랜 기간 분량을 보관하기에 터무니없는 말임이 탄로나기 가장 쉬웠기 때문이 아닐까. 가장 공들여 만들어진 결과물이 가장 큰 신뢰성을 얻게 마련이고, 최근 국내외 논문 다수는 전통적인 미디어일수록 신뢰도가 더 높단는 연구 결과를 내기도 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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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5월17일 발생한 강남역 10번출구 살인사건은 ‘여성혐오’라는 문제를 공론화하고, 존재가 부정되어온 ‘여성 혐오 범죄’를 이 사회의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큰 전환점이 됐다. 체포된 혐의자는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며 여성을 혐오하는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고, 이를 살인 범죄의 동기로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성은 물론 사람들 다수가 “이 사회와 국가에 깊숙이 뿌리내린 여성에 대한 탄압과 혐오가 표출된 사건”이라고 우려했다. 강남역에 붙은 추모 포스트잇은 명복을 비는 말에서부터 ‘여성이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다짐이나 ‘남성이라 살아남았다’는 현실비판 등 다양한 주제를 담은 1003장이 붙어 추모가 사회운동화하는 면을 보였다. 한편 “단순히 정신이 이상한 사람의 일탈적 범죄였을뿐”이라거나 “묻지마 범죄였을뿐 여성혐오로 볼 수 없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그렇다면 작금은 여성혐오범죄시대인가 아니면 일부 일탈자들을 두고 선량한 다수를 도맷금으로 넘기는 잘못된 사회적 규정이 기승을 떨치는 시기일까.

강남역 10번출구 추모 포스트잇을 정리한 경향신문 기사

■ 거듭되는 여성혐오 사건사고

  여성혐오와 관련된 사건은 실상 크고작은 형태로 언제나 일어나고 있다. 어느 사회와 국가에서도 혐오 담론은 어떠한 형태로든 모든 집단을 향해 극소수로라도 존재하고 있음이 사실인데다, 범죄 동기도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만큼 여성혐오범죄라는 단일분류로 사건들을 묶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 사회적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전반적으로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진 1990년대 이후 일어난 사건들 중, 여성 혐오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 사회에 파장을 일으킨 주요 사건들을 통해 사회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사회 인식을 바꾸고 논란 주제를 던지며 여성 혐오 범죄에 대한 진일보를 이끌어낸 주요 사건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1998 서울 서울대학교 성희롱 사건

2011 서울 고려대 의대 집단 성추행 사건

2014 서울지하철 안내문 “치마는 가려주세요”

2015 광주 조선대 의학전문대학원 데이트폭력

2015 전북 군산대 대학축제 ‘경리 포스터’

2016 서울 강남역 여성 표적 살해사건

2016 전남 흑산도 여교사 집단성폭행 사건

  1998년 서울대학교 조교 성희롱 사건은 모든 집단 내에서 존재하나 누구도 제기하지 않았고 형사 혹은 민사사건이 성립할 수조차 없다고 여겨진 성희롱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내, 성희롱에 관련된 법규가 제정되고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는 큰 전환점이 됐다. 대학원 내에서 위계에 의한 성희롱에 시달려온 여성은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사회적·법적 투쟁을 이어가 재판부로부터 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그러나 당시에 3000만원 배상 판결을 받은 이후에도 한 코미디언은 공중파 TV에서 손으로 여성의 몸매를 그리다 “앗, 3000만원!”이라고 외치는 농담을 하는 등,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2011년 고려대 의대 집단 성추행 사건은 은폐되고 침묵을 강요당해온 캠퍼스 성폭력을 세상에 고발했다. 앞길이 창창한 학생이라는 온정주의와 ‘너 하나만 조용하면 된다’는 강요 속에 피해자의 침묵 혹은 학교 이탈만이 해결책으로 제시되어온 관행에 제동을 걸고 이 사건은 국회까지 진상 조사에 나서는 등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이 때에도 가해자 측에서는 피해 여성에 대한 음담을 퍼뜨리거나 ‘피해 여성 사생활에 문제가 있었다’는 내용을 담은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등 여성 혐오와 탄압적인 모습을 보였다.

  2014년 서울 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설치된 안전한 지하철 이용 안내 간판에 등장한 ‘에스컬레이터에서 치마는 가려주세요’라는 문구는 큰 항의를 받고 교체되었다. 원하지 않는 신체 촬영 등 성추행 범죄에 대해 귀책 사유를 피해 여성에게 지우는 관행에 문제를 제기했고 변화를 이끌어냈다.

서울지하철에 붙은 '치마는 가려주세요' 문구는 가해 남성보다 피해 여성에게 책임을 지운다는 지적을 받았다.

 2015년 조선대 의학전문대학원 데이트 폭행 사건은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의 일’이라는 관념 속에 경찰에서는 사건 접수조차 꺼려하고 사회적으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온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인식 전환을 가져왔다. 남성과 여성 모두 데이트 폭력이 범죄임을 인식하게 되었고, 관행화되어있던 온정주의를 탈피해 조선대학교 측은 재판이 끝나기 전에 남학생을 제적처리하였다.

  2016년 군산대 대학축제에서는 가수 경리의 사진을 배경으로 ‘모텔까지 부축해줘... 부추전’ 등 성희롱성 문구로 가득한 포스터를 걸어 문제가 됐다. 걸그룹으로 대표되는 여성 연예인들에 대해 “섹스어필은 성공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일이니 군중들의 성적인 시선과 성추행에 가까운 발언도 참아야 한다”고 여겨져온 관행에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됐다. 여자연예인 역시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후 대학 축제에서 성적인 내용을 담은 자극적 포스터를 퇴출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올해 5월 발생한 전남 신안군 흑산도 여교사 집단 성폭행 사건은 인구가 적은 농촌 도서지역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 인권의 민낯을 드러냈다. 경찰력도 부족해 치안 서비스가 제대로 펼쳐지지 않는 낙후된 지역에서, 오랫동안 동일 집단으로 살아온 지역민들은 외지에서 부임해온 젊은 여성 교사를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고 범행을 저질렀다. 주민들은 지역적 유대감과 온정주의를 엉뚱하게 내세우며 피해 여교사보다 가해자들의 가족이 받을 고통과 지역 이미지 실추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고, 이에 분노 여론이 일자 신안 지역 단체들이 일제히 사과에 나섰다. 이는 지역 사회에서 덮고 넘어가기에 급급했던 성범죄 문제를 공론화시킨 계기가 됐다.

  이렇듯 여성 혐어 범죄는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끝없이 이어져왔고, 현재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근절되는 것은 불가능한 ‘진행형’이다.


■ 여성혐오범죄에 대한 논란

  일련의 범죄들을 ‘여성혐오’라는 시각으로 볼 수 있는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지금도 일반인들은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다. 여기서는 혐오에 대한 정의와 해석을 보다 폭넓게 하기로한다. 단순히 여성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만을 혐오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인권을 부정하는 의식을 갇거나 기본권을 침해하는 범죄 대상으로 삼는 행위는 물론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제동을 걸지 못하고 용인하거나 외면하는 사회 분위기와 집단 지성에 대해서도 ‘여성 혐오’라는 범주에서 해석할 것이다.

  여성 혐오 범죄가 최근 들어 기승을 부리고 있는지, 아니면 신경쓰지 않던 일들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사회가 변하고 의식이 발전하고 여성들의 권리가 보장되며 목소리가 높아지자 그간 문제되어오지 않던 많은 사건들이 문제로 인식되고 있어 ‘더 시끄러워졌다’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여성 혐오 사건을 받아들이는 사회와 국가와 개인의 자세를 둘러보고, 이러한 데이터가 던지는 메시지를 정제하여 우리가 나아갈 사회가 어떠한 방향이 되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5대 강력범죄 중 성별 피해자를 특정하기 애매한 부분이 많은 절도를 제외한 4대 범죄와, 20년간 지역별 출생자 성비를 살펴본다.


■ 4대 강력범죄 피해자 남녀 비율 분석

  최근 3년간 4대 강력 범죄 남녀 피해자 발생 건수는 뚜렸한 증가세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남성 피해자는 줄어드는 반면 여성 피해자는 늘고 있다. 그런데 비교 지표에서 피해자 수는 남성과 여성이 자릿수가 하나 다를 정도로 여성 피해자는 비율 면에서도 인원 면에서도 높은 편이다.

자료 대검찰청범죄통계


  이는 인구분포와 사회의식 및 환경 변화로 인한 것이다. 인구 이동과 도시 생활화를 통해 알지 못하는 사람과 일어날 수 있는 범죄가 늘어났다. 또한 아는 사람 사이에 일어난 성희롱 성폭력 등에 대해서는 여성 인권 향상과 함께 신고 건수가 늘어났다. 거기에 사회적 소득 불균형과 복지체계 파탄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계층’이 나타나면서 이들이 여성을 범죄 상대로 삼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러한 복합적인 결과로 ‘여성 혐오 범죄’는 ‘여성 혐오 성향’과 함께 동반 상승하는 것이 최근까지 이어지는 사회적 흐름이다.

■ 연도별 출생자비 분석

  20년간 출생자비를 보면 가장 높은 불균형 수치를 비롯한 영남 지역을 필두로 전국 거의 모든 지역이 1990년에도 남아가 지나치게 높은 성비 불균형 상태였음을 보여준다. 신생아 성비는 통상 여아 100명당 남아 수로 표기하며, 자연 상태에서는 100:104정도 수치를 보인다. 사회적인 여러 요건을 감안하여 100:106까지는 정상 범주로 보고 있으며, 이 수치를 넘어가는 것은 인위적인 개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이 수치가 100:110이 넘어갈 때에는 사회문제로 규정하고 해결방안을 도모해야 하는 수준으로 본다.

  남아 과다 현상은 이미 1970년대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개인의 삶을 중시하고 전통적 가치관보다 현재의 행복한 삶을 선택하며 여성에 대한 존중과 여성이 가지는 권리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성비는 꾸준히 정상 수치를 찾아가고, 2014년에 이르러서는 전국적으로 가장 불균형한 성비를 보이는 경북지역조차 정상 성비 기준치 내에 진입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93년 광역 시도별 신생아 성비2014년 광역 시도별 신생아 성비

  이러한 출생아 성비 불균형을 통해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성비 불균형 세대’의 등장이다. 성비 불균형 세대에서 경쟁이 더욱 격화된 남성들은, 전통적으로 ‘나보다 밑에 있고 지배할 수 있는 대상’인 여성들의 권익까지 보장되면서 경쟁은 격화되고 박탈감은 더욱 심하게 느끼고 되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복잡한 분석과 고찰 대신 ‘여성 혐오’로 단순하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여성 혐오 범죄는 증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성 혐오가 문제시되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벌어지는 논쟁이라고 볼 수 있고, 전통적인 ‘무조건적 남아선호’ 사상이 옅어지고 보편적 인권을 통해 여성 권익이 향상되는 요즘 성비 불균형은 해소되어가고 있어 인구적 측면에서는 우리 사회가 이미 해결책을 향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여성 혐오 범죄를 넘어

  여성 혐오와 여성 혐오 범죄 문제는 수치화된 데이터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변인인 신생아 성비나 경찰력 등 치안 활동에서는 대변혁을 일으키는데 한계가 있고, 대변혁을 일으킬 이유가 남아있지도 않다. 현 시대는 ‘인식 제고’를 심각하게 요구하는 시점으로, 보편적 인권을 전 사회 구성원에 보장하는 인식 제고와 그것을 위한 방법으로 여성 인권 보장과 개선을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한국 여성 인권은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 성평등 순위 145개국 중 115위, 유엔개발계획(UNDP) 25위 등 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혐오담론이 확산되는 것은 크게 경계할 필요가 없다. 비문제가 문제화되는 과정에서 논란이 촉발되고 커지는 것은, 여성 혐오를 없애고 사회를 보편적인 인권이 더 높아지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끌어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각 사건이 던진 메시지들을 ‘마지막 희생자의 외침’으로 만들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을 제고하고 이를 기반으로 보완된 제도가 계속해서 나온다면, 강남역 살인 사건을 끝으로 ‘여성 혐오’는 과거 이야기로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혐오범죄시대 - 강남역 10번출구, 메시지를 던지다

토론주재 김홍균 · 자료조사 고아라 · 자료분석 권오성 · 스토리텔링 김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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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0일 미 육군 건군 241주년 기념식이 열린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

  지난 6월10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는 미 육군 건군 241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미군에게 있어서는 가장 크고 신성한 행사이기도 한만큼, 신임 한미연합사령관 빈센트 브룩스 미 육군 대장과 부사령관 김현집 한국육군 대장에서부터 토마스 밴달 미8군사령관,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 등 내외빈과 카투사연합회 주요임원 및 회원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사전 행사로 진행된 스탠딩 파티에서 미군과 한국 측 참석자 및 관계자들이 친목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엄숙한 기념식과 추모의식 및 연설과 공식 행사가 진행되고, 식사 대접 시간과 함께 시작된 식후행사를 먼저 수놓은 것은 국군의장대였다. 그 어느 나라 의장대에도 뒤지지 않는 국군의장대의 의장 시범은 미군들로부터 큰 갈채를 받았다.

지난 6월10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미 육군 창설 241주년 기념식 축하무대에 선 걸그룹 빌리언.

그리고 어두워진 조명 사이로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인 소녀들 다섯 명이 들어오자 미군들도 모든 동작을 멈추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관심있게 지켜보기 시작했다. 빠른 비트에 경쾌한 음악이 그랜드볼룸 내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춤추는 다섯 소녀들은 이내 기념회장 정중앙 무대를 장악했다. 노래가 끝난 후, 우수 표창 수상차 참석한 카투사병이 통역을 위해 무대에 함께 섰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빌리언'입니다. 이런 뜻깊은 행사에 설 수 있게 되어서 우리도 매우 기쁘고, 영광입니다. 우리가 들려드린 곡은 우리 1집 수록곡인 '댄싱 얼론'입니다. 즐겁게 들으셨나요?"

  리더 레이의 무대인사에 미군과 참석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두 번째 곡은, 여러분들도 잘 아실 '잇츠 레이닝 맨'과 함께 신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익숙한 곡이 나온 탓이겠지. 미군들은 환호성과 함께 더 열띤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곡으로는 2집 대표곡 '있잖아'를 부른 후 빌리언은 무대에서 내려갔다.

지난 6월10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미 육군 241주년 기념식 축하 공연을 마친 걸그룹 빌리언과 국군의장대 장병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빌리언의 인기는 무대 밖에서 진짜 시작됐다. 장교에서 부사관은 물론 병들에 이르기까지 앞다퉈 빌리언과 기념촬영을 하고자 몰려들어 줄을 서기 시작한 것. 빌리언은 환한 웃음과 계속 변하는 포즈로 기념촬영에 응했다. 빌리언에 앞서 멋진 무대를 보여준 국군의장대 장병들도 빌리언과 기념촬영을 하며 추억을 남겼다. 열정적이고 격한 군무가 함께한 무대를 마치고, 개인 복장 등 수습을 위해 잠시 떠났다 파티타임을 위해 돌아온 후에도 빌리언을 향한 미군 참석자들의 기념촬영 요청은 끊이지 않았다. 

  베티는 "정말 많은 분들이 기념촬영을 하자고 하셔서... 정신없이 계속 찍었어요. 이렇게 호응이 많을 줄은 몰랐는데"라고 말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복무하던 시절에도, 당시 대한민국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K팝 걸그룹이 공연을 온 일이 있었다. 하지만 미군 병사들의 반응은 그저 무대를 즐기는 정도에서 끝이었다. 앞다퉈 '한국 걸그룹과 기념촬영하고싶다'고 남녀노소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몰려드는 미군들을 보니, 새삼 높아진 K팝의 위상을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기념식이 모두 끝나고 식후파티가 시작되기 전 막간을 이용해 빌리언은 '오늘 처음하는 식사'를 했다. 간식으로 끼니를 때우기는 했으나 정찬 식사는 지금이 처음이라고. 스테이크와 빵 등을 하나도 남김없이 먹어치우는 멤버들을 보니 그들이 무대에서 움직인 운동량이 생각 이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 못한 이유에 대해 멤버들은 "격렬하게 움직이는 무대에 서기 전에 많이 먹으면 몸에 무리가 오기도 하고, 아무래도 무대를 끝낸 이후 먹는게 마음도 편하고 식사를 즐기게 되어서요"라고 답했다. 예상치 못한 미군들의 열광에 대해서는 "K팝 인기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열심히 해야죠"라고 말했다.

  

그랜드볼룸 무대에서 이어진 빌리언의 실루엣 촬영.

  시간은 늦어가고 격식은 모두 내려놓는 DJ 파티타임이 시작되고, 볼룸 무대에서 펼친 빌리언의 실루엣 촬영. 연습한 포즈들을 능숙하게 취하는 빌리언의 모습을 카메라들은 바삐 담아내고, 미처 기념촬영을 하지 못한 미군들은 "K팝걸들과 기념촬영을 할 수 있겠느냐"는 요청을 해오기 시작했다. 난 "저는 관계자가 아닙니다"라는 어색한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군심(軍心)을 홀리는 걸그룹이 K팝을 지배한다고 했던가. 빌리언이 이 무대에서 보여준 열정들이 열광적 인기로 이어지고, 한미 장병들의 환호가 한류 인기로 이어지기를 무대를 지켜본 한 사람으로서 고대한다.

▲걸그룹 빌리언 미군창설기념식 축하공연 스포츠경향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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