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방영된 대한뉴스 제 831호에서 보여주는 여름 피서 국민 계도 메시지가 흥미롭다. 강과 계곡 및 해변에서 물놀이하는 시민들의 일상을 보여주며, 휴가지와 공공장소에서 공중 도덕 및 예절을 지키자는 계도성 메시지가 나온다. 국가는 국민을 도덕적으로 통제 및 계도할 의무가 있다는 그 시절다운 공보뉴스영상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영상과 내레이션의 초점은 물놀이용품을 파는 백화점과 쇼핑센터에 맞춰져있다.

  대한뉴스가 전하고픈 주된 메시지는 바로 "형편과 분수에 맞는 피서로 무리없고 명랑한 여름철을 보내자"에 방점이 찍힌 듯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실천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지나친 물놀이 용품을 구매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보면 아무리 들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법을 어겨 도둑질을 하거나 사기를 치는 등 나쁜 짓으로 모은 돈이 아닌 이상, 자신이 정당하게 노동해 번 돈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사는데 왜 국가가 그에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고 그 정도와 수위까지 조정해가며 또 그런 행동을 정당하다고 여기는걸까. 게다가 술담배와 같은 관리품목도 아니고 여가생활을 위한 물놀이 용품에 대고 말이다.

  그러나 국가주도 고속압축성장 경제로 대기업 중심 정책을 밀어붙이던 그 시절의 소비관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내수시장 성장과 확대에 의한 국내경기 활성화, 이로 인한 내국인 소득 및 삶의 질 향상을 통한 국가 행복지수 높이기... 이런 것은 개념조차 논의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성장주도 수출경제정책에서 보다 중요했던 것은 자국민을 저임금 노동 자원으로 활용해 기업집들에게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하는 것. 그것을 위해서는 소비는 죄악시되어야만 했다. 소비에 맛들인 국민들은 더욱 많은 급여와 부의 재분배를 요구하고 나설테고 그렇게 되면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한 가격우위정책이라는 국가 경제 계획의 근간이 무너지게된다.

  이 시절에는 일반 국민들의 소비를 죄악시했다. 전후 지독하게 물자를 아껴 살아간 독일과 일본 국민들의 삶은 늘 우리에게 본받아야할 금과옥조로 제시됐다. 자기 힘으로 벌어 자기 능력으로 쓴다 해도 과소비, 망국병, 사회분열조장 등 국가적으로 유해행위라 낙인찍었다. 근검절약이 미덕으로 권장되고 검소한 생활에 대한 권장도서가 각 지역 교육청들을 통해 지시되어 각급 학교들은 학생들에게 절약을 예찬하고 저축을 독려하는 독후감을 제출하도록 했다. 심지어 일부 학교에서는 어린 학생들 중 소지품이나 의류가 값비싸면 교사가 공개적으로 창피주는 등 '조리돌림'에 버금가는 행위도 거리낌없이 일어났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한국인들은 늘 자신이 가난함을 어필하는 성향이 있다.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해도, 재정적 여유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 죄라고 여겨온 과거 탓이 크다. 그러나 이제 경제 성장의 방식은 물론 목적도 바뀌었다. 자국민에게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성장은 환영받지 못하고, 세계적 규모로 성장한 내수 시장은 국내외 모든 업체에 주요 투자처가 됐다. 또, 자신이 노력하여 정당하게 번 돈을 자기 뜻대로 쓰는 것은 이제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이자 자랑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지도 않으며 되어서도 안 된다.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도덕까지 재단해들며 개인 행동마저 계도 및 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받아들이던 저 시절은, 지금 저 대한뉴스를 보며 어색해하고 과거의 일로 치부하는 우리 생각처럼 영원히 과거 유물로만 남아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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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나긴, 그리고 어느 때보다도 추웠던 겨울이 지나면서 날씨만 풀리는 것이 아니고 얼어붙은 동토가 해빙되듯 한반도에도 평화라는 훈풍이 불고 있다.

  지난 금요일 전격적으로 세 번째 이뤄진 남북정상회담은 그 어느 때보다도 대치 국면을 전환했고, 양 정상의 의지를 드러냈으며, 진일보한 기대감을 갖게 했고, 전세계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회담이 시작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에서 냉면을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말하자마자, 금요일 오후 전국의 냉면집은 밀려드는 사람들로 분주해졌다. 특히 정통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식당들은 몇 시간씩 기다릴 정도로 사람들이 밀려들었다고 한다.


연인, 친구들, 유모차를 끌고 온 가족... 많은 사람들이 저녁 식사로 냉면을 선택해 주말 냉면집이 북적인다. (2018년4월28일)

냉면을 먹기 좋은 주말이다. 날씨로도 정서적으로도. (2018년4월28일)


  냉면 열풍은 주말 내내 수그러들지 않았다. 어디를 가도 정상회담에 대한 이야기와 평화 시대에 대한 소망이 사람들의 담소거리이고,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고 기다린 남북 화해와 평화의 시대. 그 열망과 이 냉면 열풍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동네에 있는 냉면집은 가끔 냉면뿐 아니라 간단히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도 잘 하는 집이어서 가끔 들렀는데, 예상한대로 오늘은 모든 좌석이 다 차있다. 혼자서 식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미안해서 다음 사람을 위해 서둘러 일어나야할 정도다.

  평소같으면 간단한 대화도 나누고 인사도 하는 홀 지배인 여성분과도 눈인사밖에는 할 수 없었다. 계산할 때가 되어 카드를 건네며 "사람이 많아졌나요?"라고 묻자 "정말 많아졌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하기야, 나도 일부러 냉면을 먹으러 왔으니까요"라고 답하자 환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영수증과 카드를 건네주고 이내 다른 테이블로 뛰어간다.

  날씨도 풀리고 정세도 풀렸으니 이 더위를 식히기 위해 당분간 냉면 인기는 계속될 듯하다. 음식은 단순히 음식 이상의 정서적, 사회적 친밀성과 의미를 지닌다고 하지 않던가.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냉면을 먹으러 냉면집을 찾는지, 그리고 한 끼 식사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모두가 알아야 한다.

  아직도 이 평화와 화해 국면이 반갑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듯하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아마도 요즘 냉면 먹기가 더 껄끄러워져서 냉면도 잘 먹으려 하지 않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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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리 조지 감독, 돈 치들 주연인 2004년작 ‘호텔 르완다’는 1994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실제 있었던 내전과 인종 증오 학살 사건을 다룬 영화다. 영화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어떻게 내전과 인종간 갈등 및 반목에 휩쓸리고 전쟁범죄를 일으키게 되는지와, 이러한 환경에 던져진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 및 ‘인간성 파탄 시대’를 극복하는 장면을 그렸다.

  1994년 르완다 수도 키갈리. 벨기에 호텔 법인의 현지 지배인인 폴 루세사바기나는 투치족 아내와 결혼해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후투족 남성이다. 후투족과 투치족간 반목으로 내전이 계속된 르완다는 연합정부 구성과 함께 평화 시대가 눈앞에 놓은 듯했다. 그러나 오랜 기간 투치족이 지배당해온 후투족은 전의를 불태워왔고 ‘큰 나무를 베라’는 신호와 함께 투치족을 말살할 계획을 세우는 ‘후투 파워’ 민병대는 무기를 구매하고 대중을 선동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한다. 두 종족간 평화를 모색해온 대통령이 암살당하며 사회 상황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키갈리 시내가 유엔 평화유지군조차 치안을 담당하지 못하게 되면서 폴의 가족을 시작으로, 수많은 투치족 시민들이 생명을 잃을 위기에 놓이게 된다. 상대적으로 유복한 삶을 살아온 폴은 각종 뇌물과 현금으로 후투 민병대와 협상하며 투치 계열인 아내와 가족 및 친지들을 구한다. 이들을 자신이 운영하는 호텔에 데려온 폴은, 후투족 군사 최고 지도자인 비지뭉구 장군과의 사적인 친분을 이용하는 등 십분 정치력을 발휘해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돕기 시작한다.

  그러나 내부인의 밀고와 뇌물로 쓸 물자 고갈 및 후투 민병대와 깊어지는 갈등으로 폴 역시 위기에 몰린다. 처음에는 자신을, 다음에는 가족을, 그리고 그 다음으로 수많은 난민의 생계와 생사를 책임지게 된 폴은 단지 호텔 지배인으로서 해오던 의무와 역할을 벗어나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지켜야만 하는 짐을 어깨에 지게 된다.

  이 영화가 인상적이었던 세 가지 특징은 주인공 폴의 심경 변화 및 의지를 유지해가는 고난을 그려낸 것, 권력자와 초인적인 주인공 등 비범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닥치는 갈등 및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점, 그리고 구체적인 살인이나 범죄에 대한 묘사와 장면 없이도 사람을 옥죄어오는 고통을 관객에게 느끼게 하는 연출력이다.


■ 평범한 가장 폴이 휴머니티를 접하기까지

  폴은 투철한 박애주의자도, 정의감에 불타는 사도도 아니었다. 민병대장이나 군부 지도자 및 유럽인 호텔회장 등에게 적당히 잘보이고, 뇌물을 이용한 협상 등 상대적으로 비도덕적인 행위도 큰 무리 없이 해내며 그저 ‘호텔 지배인’이라는 자기 직분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후투 시위대에 둘러싸인 호텔 차량을 향해 시위대가 “저 운전사는 투치 녀석이다”라며 위협하자 시위대 지지 셔츠를 들어올리며 “후투 파워! 후투 파워!”라고 외쳐 위기를 벗어날 정도로, 신념을 지키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영화 '호텔 르완다' 중 키갈리 시내를 행진하는 후투족 과격파의 시위 장면.

  그러나 후투 민병대는 치안권을 장악하며 그의 집을 에워싸고 그의 아내와 처가 식구들을 모조리 체포하는 등 실력 행사를 시작한다. 그는 “쓸데없이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는 귀중품과 현금 등 몸값을 받는 것이 나으니, 호텔로 나와 같이 가자”며 민병대와 협상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의 고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고, 유엔 평화유지군 사령관과 국제구호기구 활동가들은 물론 수많은 난민 어린이들 등 오갈 데 없고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책임져야하는 상황이 닥친다. 또한 민병대가 무력으로 호텔을 접수하려는 위기도 맞는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애써 흔들리지 않으려 노력한다. 여타의 영화나 창작물에서 주인공들이 초인적인 담담함과 초월적 능력을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곧 자신도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며 이는 관객에게 생생히 전달된다. 그러나 벨기에의 호텔체인 회장을 통해 벨기에 및 프랑스 정부를 움직이고, 후투족 민병대를 프랑스의 힘을 이용해 막아내는데 성공한다. 또한 적절한 뇌물 협상력으로 후투족 군부 최고 지도자 비지뭉구 장군과 친분을 유지해 호텔을 안전지대로 방어해낸다. 유엔 평화유지군 사령관 역시 그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안전이 답보되지 않는 죽음의 길을 뚫고 시장에 가서 호텔에 필요한 식료품과 소모품들을 구매해오고, 소개된 타 호텔 체인들의 물품들을 빼내와 협상에 재응용하는 등 일반적이면서도 비범한 행동들에 나서게 된다.

'호텔 르완다' 영화 중, 르완다 대학살로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인 '생생한 현장'을 목격하고 호텔로 돌아온 후 마음이 무너지는 고통을 애써 참아내는 폴.

  그의 노력과는 달리 호텔 내에서도 ‘투치족을 옹호한다’는 그의 약점을 잡고 협박하는 직원이 생겨나고, 민병대 또한 그를 의심하기 시작하며, 유엔 평화유지군의 희생까지 발생하는 등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마침내 투치 난민들도 유엔 평화유지군과 함께 탈출시키고 그 또한 가족들과 함께 위험한 키갈리 지역을 벗어난다. 마지막 장면에 갑자기 나타난 투치 방위군이 후투 시위대를 처리하는 장면은 조금은 작위적이라 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하늘이 돕는 것’과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 그만의 줄거리가 이어진다.


■ 영웅도 높은분도 아닌, 우리네들의 이야기

  이 영화는 이렇듯 ‘보통 사람들의 고난기’를 그렸다. 전쟁의 승패나 국제 관계의 치열한 회의와 ‘높으신 분들의 회의’ 및 그에 따른, 수천만의 운명과 나라의 미래가 결정될 중대 순간 같은 것은 그려지지 않는다. 그런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일개 시민들이, 보이지 않는 위협에 생명을 잡혀있는 공포스러운 순간들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래서, 저 멀리 아프리카에 일어났던 일이라고는 해도 그 공포감과 고뇌는 우리에게 생생히 전해져온다. 특히 한국은 수백만이 죽고 어제까지 함께살던 사람들이 두 패로 갈라져 목숨을 앗아간 전쟁을 직접 겪은 나라이기에 우리가 받는 느낌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폴에게 가장 어려운 점은 민병대의 습격을 막는 것과, 수많은 사람들을 보호하게 된 호텔 운영을 어떻게든 계속 해나가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 암시장에도 다녀오고, 군부 지도자와 민병대장에게 시가와 위스키를 선물하는 등 정치력도 발휘하고, 그 와중에도 세탁을 마친 양복으로 갈아입는 등 ‘본분’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비록 전쟁터는 아니더라도 이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폴이 곧 자기 자신이라고 느낀다.

영화 '호텔 르완다' 중, 주인공 폴이 부인 및 국제구호기구 활동가와 함께 난민 어린이들을 대피시키는 장면.

■ 잔혹한 장면 없이도 숨을 죄어오는 공포

  또한 영화에서 실제로 사람이 죽는 것은 단 한 장면 뿐이다. 서방 카메라 기자가 몰래 시내로 나가 후투족이 투치족을 집단 학살하는 장면을 담아온 비디오를 서방 기자가 보는 장면은 대략 5초 남짓이다. 그러나 그 충격은 5초로 끝나지 않는다.

  후에 물품 조달을 위해 외부에 다녀온 폴은 길이 끊겨 다른 길로 차를 돌아가려다 산더미처럼 쌓인 투치족 시민들의 시체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른 아침 자욱한 안개가 낀 길에 수없이 펼쳐진 민간인들의 시체. 폴은 오열조차 하지 못하고 공포다운 공포도 느끼지 못하며 마비되고 만다. 겨우 호텔에 돌아온 폴은 피묻은 옷을 벗고 새로 갈아입을 양복을 붙잡고는 더 이상 움직이지조차 못하고 소리없이 오열한다.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까지 증오하면 이렇게까지 잔인한 짓이 벌어지고, 또 그런 현장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도 없는 사람의 무기력함과 이런 일이 또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생생히 잡혀오는 오열이다.

  ‘고어’라고 표기되는 잔혹한 장면 없이도 감독은 관객들의 숨통을 죄어오고, 또한 인간성 근원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영화 '호텔 르완다' 중

  영화는 요즘들어 크게 흥행하고, 또 영화사적으로도 반복되어온 ‘이렇게 세계를 구해냈습니다’ 류의 결말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내전은 종식되었지만 미약한 관련자 처벌만이 있었을 뿐이고, 르완다의 상황이 더 이상 나아지거나 갈등이 종식되었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실타래가 여전히 풀리지 않은 현실을 영화에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이다. 어느 영화보다도 현실에 기반을 둔 만큼, 결말조차 현실처럼 ‘열린 결말’이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시작도 결말도 주인공을 맡은 것은 절대 영웅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다. 그것이 총리도 장군도 혁명가도 아닌 폴을 통해 ‘르완다 사태’라는 거대한 사건을 스크린에 그려낸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Posted by 카르페디엠_CarpeD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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